풋고추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중부지방에는 수해가 날정도로 게리라 폭우가 쏟아졌으나

여기 대구는 바람 따라 구름만 오락가락 하며 폭염에 가뭄이 더해가고 있다.

며칠째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40여년만의 가뭄이라 한다. 대문간 빈터 화분에 심은 고추가 내가 매일 물을 줘서인지 고추가 맺더니 이제 제법 커져 진녹색으로 윤을 내고 있다. 오늘 점심상에 아내가 화분에 심은 고추 묘에서 따왔다면서 접시에 2개를 얹어왔었다. 관상용으로 심은 것인데 따먹어버리면 아깝지 않으냐 고 했더니 이왕 따온 것이니 맛이나 보라해서 밥 한술을 입에 넣고 날된장에 찍어 씹었다. 껍질이 여물고 딱딱 했다. 혀끝에 상큼한 풋 냄새와 함께 매운맛이 톡 쏘며 침샘을 찔렀다. 고추는 매운맛으로 먹는다고 했는데 알맞게 메웠다. 이제 나이 탓인지 때를 기다리게 했던 식성이 없어진지 오래다. 고추의 매운맛이 입맛을 새롭게 했다.

 

문덕 지난 어린 시절 시골 고향 생각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러 받은 고축망대 밭에 아버지의 살림집을 짓고 남은 뒷 터에 철 따라 배추 무 감자 고추 마늘 상추 등 채전으로 찬거리로 때웠다. 한여름 보리타작을 하다가 땀을 식히며 뒷밭 채전에서 따온 고추에 바로 옆 돌담너머 이웃집 사돌 댁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러온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생된장에 찍어 먹으면서 매워서 눈물을 찔끔거린 추억이 아련했다. 쌀 한 톨 안 섞인 꽁보리밥에 찬이라고는 된장 한가지뿐인데도 어찌 밥맛이 그렇게 있었는지. 6.25전쟁 최전방 격전지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나 들 때 안 죽고 살아 돌아가면 밥 배불리 먹고 잠 싫건 자는 게 소원이었다. 학교에서 실습을 마치고 돌아온 외손녀가 치자를 시켜 먹으면서 먹자고 한다. 비만으로 살빼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도 제 할미가 지어주는 밥을 외면하고 식성을 못 고치고 있으니 딱하다. (2017년 7월 13일 일기에서) 미리보기를 클릭하면 사진이 나옵니다